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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련의 ‘역사와 장소성’ 탐구 프로젝트 _ 〈안개의 그림자〉를 중심으로 / 김기수 (미학박사, 디카대표)

I.

2022년 가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 인근 매봉산에 위치한 문화비축기지(T5)에서 개막한 《기억을 걷는 시간》(2022.10.15.~2023.1.29.)에는 한 개의 팀(동인천탐험단)과 두 명의 작가(이성민, 김미련)가 참여하여, 각각 인천, 서울, 대구 지역의 근/현대역사의 특정 기억과 장소 문제를 다뤘다. 동인천탐험단은 일종의 아트 콜렉티브 성격의 단체로서 <신흥동 일곱주택>(2019-2020)과 <산곡동 프로젝트>(2020-2022)에서 인천 구도심(신흥동과 산곡동)의 건축물들이 근현대기를 거치며 개발과 재개발을 둘러싼 여러 층위(역사적, 사회문화적, 도시 건축적)의 문제를 조사, 탐구했으며, 이성민은 <개포동 그곳> 프로젝트에서 1980년대 지어진 서울시 개포주공 1단지의 재건축을 앞두고 아파트 주민들과 더불어 서식했건만 이제는 폐목의 운명에 처한 각종 수목에 관해 다각적으로 조사하고, 또한 이들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을 소환하며 생태적,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탐구했다. 한편 김미련은 <안개의 그림자>(2022)와 <풍경의 좌표>(2022)에서 분단 시대 가족사의 현대적 의미를 모색했고, 영상작업 <이사의 기술>과 슈프레히콜 <나의 살던 고향은>2019에서는 대구 최초의 시영아파트인 동인아파트의 재개발을 둘러싼 거주권, 노인, 풀뿌리 민주주의 등의 문제를 다뤘다.


이글은 이 가운데 김미련의 ‘개인 가족사’와 ‘동인아파트 재개발’ 프로젝트가 갖는 의의를 한편 《기억을 걷는 시간》 전시 주제와 연동하여, 무엇보다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의 담론과 실천의 맥락에서, 특히 ‘역사와 장소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분석할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역사’는 오랫동안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온 ‘단일적이고(monolithic), 객관적인(objective) 역사’를 전제하는 구조주의 역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며, 역사가 어떻게 ‘다층적 과거’로 구성된 것인지, ‘주관적 산물’인지를 규명하는 탈구조주의 역사 철학에 기반한다. 이를테면, 미셀 푸코와 자크 데리다는 그들의 주요 저서에서 기존의 역사란 고정된 게 아니라 이념이나 권력에 의해 구성된 것이며, 따라서 언제나 재편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푸코와 데리다는 역사 서술의 토대(사료)로 기능하는 아카이브가 왜 무한 축적이 아니라 선택적 수집이며, 따라서 객관적 권위체가 아니라 주관적 구성체인지,1)  왜 아카이브의 권력이 ‘위임’의 문제로 귀결되는지를2) 논의한다. 요컨대, 이러한 탈구조주의 담론은 현대미술, 특히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미술이 – 기록된 거대(즉 국가/민족) 역사와 기록되지 않은 (기층민) 개인 역사 사이의 역학관계를 소환하며 - 아카이브를 통해 ‘역사적 현재’의 의미를 재해석하며 ‘대안 담론’ 또는 ‘대항 담론’을 개진하는 것과 관계해왔다.


한편 현대미술에서 ‘장소성(siteness)’ 또는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은 앞선 시대의 모더니즘 양식과 차별화하는 주요 개념이다. 모더니즘 미술에서 작품은 외부 세계나 당대 시대와 분리된 채 오직 자기의 내적 논리에, 예를 들어,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이론에 따른다면 “평면성(flatness)”의 원리에 따라 창조된다. 그러므로 모더니스트 작품은 시공의 조건, 특히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서 벗어나 어떤 화이트 큐브 공간에서 전시되더라도 그 작품의 고유한 의미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많은 작품은 장소성 또는 장소-특정성을 갖는데, 그것은 그 작품이 어떤 특정한(역사적, 사회적, 건축적, 공간적 등의) 장소나 맥락에서만 그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닉 케이(Nick Kaye)의 ‘장소성’ 또는 ‘장소-특정성’의 이론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 [작품의] 발화, 행동, 사건의 의미가 그 ‘지역적 위치’(local position)에 의해, 그 ‘상황(situation)’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면 – 그 장소와 위치에 연관해서 정의될 것이며,” 그리하여 “‘장소-특정적 작품’은 오브제 또는 사건과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 사이의 특정한 관계에서 생성된 속성, 성질 또는 의미를 통해 자신을 명시하거나 정의한다.” 3)


II.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비축기지(T5) 2층 이야기관 오른쪽 로톤도 복도를 따라 1실과 2실로 나눠 전시된 김미련의 <안개의 그림자>, <풍경의 좌표>, <아카이브>, <이사의 기술>, <나의 살던 고향은>을 차례를 검토해보자. 주제적으로 전자의 두 작업은 작가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의 역사적 현재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고, 후자의 두 작업은 최근 철거된 대구 최초의 공영 아파트의 재개발을 둘러싼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가운데 <아카이브> 작업은 위 두 주제에 관한 다양한 자료 및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전체 전시 구조를 살펴보자면, 우선 1실의 <안개의 그림자>

프로젝트는 왼편에 작가의 부친 ‘김천종의 인터뷰’가 모니터를 통해 잔잔히 흘러나오고 있고, 맞은편에는 대형 흰색 커튼을 사이에 두고 손영득 작가와 공동 제작한 ‘3D VR 영상 설치 작업’이 헤드기어가 놓인 의자와 함께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2실 가운데 대형 유리 박스 <아카이브> 작업에는 <안개의 그림자>와 연관된 가족의 사진첩, 문서(족보), 실타래, 그리고 플렉시 글라스로 포장된 <DMZ의 피부>와 <수보국애 I>, 그리고 <보족씨김앞내>가 각각 수직, 수평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고, 또한 ‘동인아파트’ 재개발과 관련된 탁본, 유물 등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오른쪽 벽면에는 6점의 컬러프린트 <풍경의 좌표> 연작이 걸려 있고, 왼쪽에는 다큐멘터리 영상작업 <이사의 기술>, 그리고 정면 맞은편 상단 가벽에는 슈프레히콜 <나의 살던 고향은>의 영상작업이 설치되어 있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안개의 그림자> 프로젝트는 작가의 할아버지 형제의 월북과 그 사건이 드리운 기나긴 - 하지만 기억 속에 묻어야만 했던 - 어두운 가족사의 소회를 처음으로 밝히는 아버지 김천종의 인터뷰(비디오)’와 생면부지의 할아버지가 휴전선을 넘어 북행을 감행하는 장면을 입체적으로 시각화한 ‘3D VR 영상작업,’ 이러한 북행 루트를 따라 조성된 식물 생태계의 역사를 보여주는 ‘스캐노그래피 작업’과 몇몇 관련 ‘아카이브 작업,’ 그리고 이들의 현재적 의미를 반추하는 ‘커튼 작업’과 3점의 ‘사포 작업’으로 구성된다. 김미련에게, <안개의 그림자>는 마치 안개처럼 실체가 분명치 않은 무언가가 오랫동안 아버지의 의식, 무의식, 잠재의식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집요하게 짓누르고 있었던 한 개인사 및 가족사에 관한 장기 탐구 프로젝트이다. 그 시발점이 바로 가족사에 대한 아버지의 인터뷰이다. 인터뷰에서 고령(86세)의 아버지는 그의 부친(작가의 조부) 김성술이 어떻게 어린 5남매와 아내를 남쪽에 남겨둔 채 좌익활동을 했던 동생(김성걸)의 안전을 위해 그를 데리고 북행(北行)을 선택하게 됐는지,4) 그리하여 이 사건이 줄곧 작가의 아버지 가족사에 기다란 침묵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한동안 자식들의 미래를 옥죄게 되었는지를, 그간 누구에게도 쉬 꺼낼 수 없었던, 따라서 기억에서 지워버렸던 과거사를 예술가인 막내딸의 비디오카메라 앞에 낮지만 분명한 어조로 되살리고 있다.


나아가 작가는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위 아버지의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당시 상황을 가상 세계로 구현한 <안개의 그림자> 3D 영상작업을 통해 관객들으로 하여금 북행의 긴박한 순간과 분단의 냉혹한 현실에 대한 강렬한 시지각적 체험을 유도한다. 작가는 여기서 할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의 기억 속에 파편으로 유영하는 철조망, 참호, 초소, 군화나 꽃, 나비, 안개 등을 배치하고 비현실적인 대형 풍선과 귀들을 떠다니게 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분단 현실에 대한 입체적 시지각적 체험을 통해 작가의 아버지가 가졌을 법한 – 또한 우리 모두의 의식, 무의식, 잠재의식을 여전히 사로잡고 있을 법한 – 정치적, 심리적 억압 메커니즘의 (현실과 초현실의) 다양한 층위를 사유하게 한다. 이러한 한 개인의 역사적 북행 사건이 바로 6.25 전쟁 전후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중심으로 특히 대구 경북지역에 광풍으로 휘몰아쳤던 매카시즘(반공주의)과 극우주의 이데올로기와 연동되어 있음을 암시하면서도, 작가는 전쟁과 분단의 상흔과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희망의 줄기를 겹겹이 교차시키며 다양한 사유를 촉발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작가의 가족사가 표면상 매우 드문 각별한 경우인 것 같지만 실제로 결코 드물지도, 각별하지도 않은 분단 시대의 수많은 비극적 서사의 한 사례일 뿐이라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5)


김미련은 이러한 할아버지의 북행 사건에 대한 ‘아버지의 인터뷰’와 이를 기반으로 당시 사건의 현장을 ‘3D VR’ 작업으로 시각화한 뒤, 이러한 아버지 가족사의 역사적, 현재적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우선 할아버지 형제가 월북했던 북행 경로를 여러 가지 자료 조사를 통해 직접 답사하면서, 그 경로에서 채집한 식물의 좌표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북행 경로의 (특히 식물) 생태계를 탐구하는 스캐노그래피 작업 <풍경의 좌표> 6점( 총13점을 제작했으나 전시는 6점)을 제작했다.


작가는 고향인 안동 내앞마을에서 인제 서하리 DMZ와 대암산 용늪(남한에서 유일하게 북방식물과 남방식물을 모두 볼 수 있는 곳)까지, 구체적으로 안동 의성의 봉화산, 영주 소백산, 영천 보현산, 원주 태백산, 최북단 금강산, 팔봉산을 답사하거나 식물 생태계를 조사하며, 이를테면, 두루미천남성, 할매미망, 쥐방울덩굴, 매화마름, 무늬잎개별꽃, 흰지칭개 등을 포함한 다양한 희귀식물을 스캐노그래피하여 컬러프린트로 제작했다. 문인화의 사군자나 화훼화를 연상시키는 양식과 기풍으로 제작된 <풍경의 좌표>는 사실 묵직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들은 할아버지 형제의 북행 동선을 목격한 유일한 산증인이자 그들의 행적의 역사를 간직한 기억자의 기표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풍경의 좌표>는 작가가 은유적으로 들꽃과 나무에 기억력을 부여함으로써 한 개인의 부재한 아카이브를 복원하는 예술적 전략의 작업이었다.

그런 뒤 작가는 아버지의 비극적 가족사 서사가 갖는 역사적 현재의 의미를 추적하는 독특한 일련의 사포 작업을 선보인다. <DMZ의 피부>(2022)는 분단 이래 줄곧 남북이 서로 대립하며 체제 비방 또는 선전용으로 뿌린 수많은 삐라를, <수보국애1>(2022)는 속칭 태극기부대로 알려진 극우 세력이 집회를 위해 활용한 전단지, 복장, 포스터를, <보족씨김앞내>(2022)는 한국 근현대사의 혁신과 보수, 독립과 친일, 좌익과 우익의 양 계보를 모두 갖는 의성김씨 족보를 각각 2cm 정도의 두께로 풀제본하여 말린 뒤 사포로 장기간 천천히 갈아내어 추상 계열의 조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아크릴판 액자로 제작된 작품들이다. <DMZ의 피부>는 가운데 앵포르멜 작품을 연상시키는 추상 이미지와 그 주위로 겹겹이 휘감은 촘촘한 등고선이나 나이테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이는 70여 년의 긴 분단의 역사와 그럼에도 여전히 형태를 알 수 없(informal)는 현재 남북상황, 즉 ‘DMZ의 피부’를 엿보게 하는 듯하다.



<수보국애1>은 ‘애국보수’를 거꾸로 읽은 제목의 작품으로 보수 집회의 전단지, 포스터 등을 파랑과 빨강, 흰색과 검은색의 추상 이미지로 전환하고 뒷면(남북 국기를 겹친 이미지)도 볼 수 있도록 세워둠으로써 국가 폭력의 문제를 다뤘고, <보족씨김앞내>는 ‘내앞김씨족보’의 순서를 뒤집은 제목의 작품으로 학봉 김성일에서 할아버지, 아버지로 이어지는 의성김씨 족보를 사포로 문질러 반추상 이미지로 전환함으로써 족보의 대안적 해석과 새로운 구축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이렇게 볼 때, 김미련은 <안개의 그림자> 프로젝트에서 – 특히 현대미술의 개념주의 관점에서 – ‘역사’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글머리에서 – 푸코와 데리다의 관점을 빌어 – 역사 서술의 토대로서 ‘아카이브가 왜 무한 축적이 아니라 선택적 수집이며, 따라서 객관적 권위체가 아니라 주관적 구성체인지’를 밝힌 바 있고, 특히 오쿠이 엔위저는 어떻게 국가가 아카이브 구축의 문제에서 언제나 자신(국가)의 이념에 따라 각종 문서, 사진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를 결정해 왔으며, 따라서 어떻게 현대미술가들이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의 역사 서술 체계에 문제를 제기했는지에 관한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6)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는 1전시실의 미색 커튼 하단에 “모든 경계는 가시거리 제로의 허상이고, 모든 한계선은 충돌선이자 오리무중의 안개였다”라고 말하며, 남북 분단사가 한 유교 집안의 개인사에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어머니/딸의 관계를, 또한 아버지의 의식 및 심리를 다층적 (보수/혁신, 독립/친일, 좌익/우익 따위의) 분열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며, 이들이 결국 허상(이데올로기)의 희생자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요컨대, 김미련의 아카이브 프로젝트는 그간 공식적 역사에서 기록될 수 없었던 한 개인의 비극적 가족사를 다양한 매체와 전략을 활용해 공적인 전시 공간에서 풀어놓음으로써 국가의 공식적 역사 서술 체계에 문제를 제기하며 대안적, 대항적 역사 담론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III.

이와 더불어 김미련은 현대미술의 ‘장소성,’ 특히 ‘장소 특정성’의 이슈와 관련된 두 개의 프로젝트 <이사의 기술>(2019-현재)과 <나의 살던 고향은>(2019)을 전시했다. <이사의 기술>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이 소재한 대구광역시 중구의 ‘동인아파트’ 동네가 2018년 무렵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곧장 캠코더와 카메라를 들고 아파트 및 그 주변을 주기적으로 촬영하고, 주민들의 이야기와 인터뷰를 기록해오고 있는 진행형의 다큐멘터리 작업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작가가 자신이 결성한 지역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로컬포스트’를 중심으로 대구 최초의 시영 ‘동인아파트’의 철거와 재개발을 둘러싼 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예술적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는 사실이다. <이사의 기술>과 이와 관련된 유리 상자의 아카이브 작품들은 로컬포스트의 다양한 구성원들, 즉 미술가, 서예가, 연극인, 르포작가, 인문학자 등이 실로 다양한 프로젝트, 즉 아카이브, 슈프레히콜, 생태인형극, 미디어파사드, 게스트하우스, 르포글방, 정원 가꾸기 등을 진행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2전시실 유리 박스에는 작가와 동네아이들이 함께 먹이나 석고, 지점토 등으로 동인아파트 역사의 흔적인 고양이 발자국, 허물어지는 벽, 벽에 새겨진 이름, 백로의 소음과 분비물의 악취로 베어진 히말라야시다 나무의 둥치등을 탁본한 작업과 동인아파트 8경 엽서를 제작한 작품 등이 진열되어 있다.


한편 슈프레히콜7)  <나의 살던 고향은>은 작가가 동인아파트 재개발의 문제를 다룬 기획전 ≪동인동인(東仁同人)-linked≫(2019)에서 공연된 작품을 촬영한 영상 작품이다. ≪동인동인≫은 ‘장소-특정성’의 전형적인 전시 프로젝트로서 동인아파트 전시관(2동 37호), 슈프레히콜 <나의 살던 고향은>(3동 나선형계단), 생태인형극 <동인그루터기와 백로>(3동 7호), 미디어파사드 <마을이동극장>(3동 나선형계단외벽), 게스트하우스 <동인아파트에서 하룻밤 잠자기>(5동 37호), 르포글방 <분꽃글방>(3동 7호)과 <행복정원>(5동 앞뜰) 등으로 구성되었다. ‘대구 메가폰 슈르레히콜’은 2019년 결성된 연극단체로서 《동인동인》을 위해 슈프레히콜 <나의 살던 고향은>(이현순 극본, 연출)을 창작하여 아파트 3동 앞뜰에서 공연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은 “동인아파트 재개발을 둘러싼 여러 정치적 이슈를, 이를테면, 개발업자(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철거되면 결코 다시는 고향에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의 아파트 주민들의 문제를 다뤘다. 일곱 명의 공연자들이 강렬한 색채 대비를 이루는 블랙 슈트와 핑크 타이즈를 착용하고 커다란 핸드 메가폰을 통해 ‘집은 인권이다!’라고 합창하며 돈의 개발 논리가 어떻게 사회적 약자들의 거주권을 박탈하고, 인간적인 문화와 인근 생태계를 파괴하는지를 서정적이면서도 신랄하게 보여[줌]”으로써”8)  아파트 주민과 시민 관객의 큰 반향을 끌어냈다.


이렇게 볼 때, 김미련은 다큐멘터리 영상작업 <이사의 기술>과 슈프레히콜 영상작업 <나의 살던 고향은>을 통해 한편 장소-특정성의 전시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었고, 또한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동인동인》 프로젝트의 비판적,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요컨대, 작가는 소위 장소-특정성 프로젝트를 통해 반세기를 일기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동인아파트(1969-2020)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던져놓은 도시공동체, 젠트리피케이션, 풀뿌리 민주주의 등의 문제를 예술적, 생태학적, 인문학적 관점에서 다루며 주민과 시민에게 용기, 희망,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김미련은 2008년 오랜 독일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이래 개인 미술가로서 국내외에서 동시대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해오면서도, 또한 지역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로컬포스트’를 주도하며 청도 삼평리 송전탑 반대와 성주 소성리 사드(THAAD) 배치 반대 현장에 들어가 현지 주민들과 장기간 협업적 프로젝트를 실행해왔다. 지난 십 수년간 개인 작업과 콜렉티브 활동을 동시에 수행하며 과로한 탓으로 최근 병마와 싸우고 있는 와중에도 작업과 전시를 멈춤 없이 지속하고 있는 김미련 작가는 양쪽 활동으로 미술계의 관심이 분산된 탓인지 아니면 고질적인 지역 미술가 소외 탓인지 아마도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미술가의 하나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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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ichel Foucault, The Archaeology of Knowledge, trans. A.M. Sheridan Smith (New York: Pantheon Books, 1972), pp. 123-131. 

2)   Jacques Derrida, 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 trans. Eric Prenowitz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5), pp. 7-23.

3) Nick Kaye, Site-Specific Art: Performance, Place, Documentation (London: Routledge, 2000), pp. 1-12.

4) 한국 분단사에서 간과된 개인 서사에, 특히 안동내앞 마을 김성술, 성걸 형제의 북행 서사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

류승완, 『역사와 기억 사이』, 2022, pp. 18-52.

5) 통계청의 『2005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월남, 월북 가족을 모두 포함한 수치이긴 하나 이산가족은 총 71만 명(총인구 대비 1.5%)이나 된다.

6)  Okwui Enwezor, Archive Fever: Uses of the Document in Contemporary Art (New York: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2008).

7)  슈프레히콜(Sprechchor)은 독일어 ‘Sprechen(말하다)’과 ‘Chor(합창)의 합성어로 20세기 초반 독일에서 시작되어 일제강점기에 한국으로 전파된

집회, 시위 형식의 전위연극이다. 간결한 시구, 합창, 안무의 콤비네이션으로 구성되는 슈프레히콜은 보통 여러 명의 예술가와 시민들이 한 팀을 이뤄

거리나 공적 공간에 개입하여 지역의 사회적, 정치적 현안을 예술적으로 다루는 집단 시위 예술형식으로 최근 현대미술의 현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8)  김기수, 「≪동인동인(東仁同人)-linked≫: 어바니즘, 미술행동, 민주주의」, 『인문연구』 제90호, 2020, pp. 207-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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