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의 발견, 그리고 재배치 이 원곤(미디어예술론/단국대)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공간을, 우리들은 장소라고 부른다.
그리고 어떤 공간이 그냥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간은 인간과 관계의 반복과 축적을 통하여 비로소 ‘어떤 장소‘라는 감각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동체에 있어서 장소는 구성원의 행동을 해석하고 또 구속시키는 문맥으로 기능하게 된다.
하지만 광화문에 세워졌다가 사라진 조선총독부 건물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장소에 다른 문맥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문맥이 지금도 교차하고 있는 예루살렘은 한 장소가 각기 다른 역사적 기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또 어떤 때는 과거의 것이 완전히 지워지기도 한다. 멕시코시티의 대성당(Templo mayor)앞 조칼로 광장의 지하에서 과거 아즈텍문명의 신전이 발견된 사건은 그 장소의 문맥을 다르게 인식하게 만든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어디 이곳뿐이겠는가?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콘크리트의 숲으로 변해가는 한국의 도시들은 지금도 과거의 기억과 문맥을 불도저로 지워버리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토목과 건축에 의해 지도가 순식간에 바뀌어버리는 경우가 아닐지라도, 장소로서의 공간이 새롭게 규정되고 재구축되는 일은 우리 도시에서 너무 흔한 일이다.
예를 들어 요즈음은 이사하는 일이 간편해졌다. 한 가족의 삶을 담았던 아파트내부는 재빨리 정리되고, 새로 도배, 혹은 칠을 하고, 다음엔 다른 가족에 의해 다른 방식의 삶이 채워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대의 도시공간이 지닌 장소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며 다른 문맥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작가 김미련은 마치 조칼로광장에서 그 땅 밑에 비장된 과거를 탐험하고, 그 문맥을 되살리는 고고학자처럼 행동한다.
<before/after>(2006)는 뒤셀도르프미술대학의 작업실의 벽에서, 전시를 위하여 폐쇄하고 도색해 버렸던 수납장으로 쓰이던 공간을 발굴하듯이 드러내는 과정을 담고있다.
마치 조칼로광장 지하의 아즈텍신전이 어느날 갑자기 지진으로 갈라진 땅 밑에서 자신을 드러냈듯이, 또는 그 유명한 장경동(藏經洞)이 돈황 막고굴 제16호굴의 벽의 갈라진 틈을 통해 열렸듯이, 작가는 하얗게 도색된 벽면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미세한 단서를 포착하고 그곳으로부터, 마치 고고학자처럼 조심스럽게 이면의 숨겨진 곳을 드러내, 마침내 그 문을 열어 보여준다.
그것은 범죄현장에 대한 과학수사처럼 차가운 방법의 진행이지만, 그 결과로서 보이지 않던 곳이 드러나며, 한 공간에 존재했던 두 개의 장소, 문맥 혹은 두 개의 리얼리티가 교차하는 순간은 마치 런던의 킹스크로스역 ‘9와3/4플랫폼’에서 벌어진 마술(영화 ‘해리포터’의 한 장면)과 같다.
하지만 이 작업을 통해 분명해지는 것이 바로 이 장소의 역사이다. 두 개의 리얼리티가 정교한 분리작업을 거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또 역력한 흔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wall closet>(2007)은 이 두 개의 리얼리티가 교차하는 장면을 두 개의 LCD모니터로, 혹은 빔 프로젝션으로 연출하는 후속작업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김미련의 그 다음 단계는 이러한 여러 문맥들의 지도를 다시 구성하는 일이다.
<Remapping>(2006)은 한국에 살면서 태평양을 중심으로 그려진 세계지도에 익숙했던 작가가 유럽에서 대서양을 중심으로 재배치(?)된 세계지도를 보고 낯설어 했던 경험에서, 세계가 역사성과 그것을 보는 주체의 관점에 따라 유동적인 것임을 구조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 작품은 그러니까 세계지도 즉 장소에 대한 이해는 보는 이의 시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환기(喚起)라고 할 만하다.
<Remapping Worringer Platz>(2007)은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이 거쳐가는 보링거광장의 글라스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다문화적이고 복합적인 상황들이 입방체의 ‘전개도’처럼 펼쳐진 ‘구도’에 수납되어있다. 그러므로 이곳에 보여지는 다양한 사건들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하늘은, 전술한 태평양이나 대서양처럼, 이 ‘세계지도’에서의 중심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귀국 후의 김미련은 장소에 대한 또 다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범죄수사에서 사용되는 ‘부재증명’(=알리바이)처럼 자명한 논리로서 ‘나는 지금 이곳에 있기 때문에 그곳에 있지 않다’는 명제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인간이 공간을 이동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장소’들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고 그것들을 하나로 녹여내고자 하는 것이다.
<here and there>에서는 작가가 10여년간 유럽과 한국에서 차장으로 촬영한 ‘길’의 영상이 두 개의 화면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재생된다. 즉 여기서는 공간의 편집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떨어진 장소들의 융합이 시도되는 것이다. 또 이 영상들이 마치 ‘오래된 기억’인양, 낡은 여행용 가방에 수납되어 있다. 이러한 연출은 <Rail> (2008)이나 오디오만을 다룬 <일기예보>등에서도 이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리얼타임으로 재생되는 현재인 동시에 오래된 ‘기억’이다.
한편, 작가가 이번에 가창분교의 작업장에서 연출하는 <4개의 트인 통로-안과 밖>은 위에서와 같은 ‘장소의 격리’가 사실은 매우 일상적인 것임을 새삼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 같다. 여기서 작업장은 그 안에 설치된 큐빅공간에 의해 ‘안’과 ‘밖’으로 격리되고, 관객들은 자기가 지금 서 있는 이 ‘공간’과,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자신이 부재(不在)한 벽 저편의 장소의 현재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는 장소’는 실상 그것을 경험하는 주인공의 뇌(腦)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자, 인간이 공간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그것을 자신의 내면으로 이끌어들인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삶 속에서 만난 장소들이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며 용해된 결과인 이 세계야말로 작가의 의식이 찾아내고 또 그 안에서 예술가로서의 정신적 삶이 영위되고 있는 ‘제3의 장소’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Discovery and Relocation of Place
Won-gon Lee (Media Art Theory/Danguk University)
-Gachang Creative Studio, Open Studio, Exhibition Review, 2009
Space that sustains human life is called place. Not all space can be a place. Space attains the sense of place from repeated and accumulated relationships with people. And for a community, place functions as a context in which the member behaviour is interpreted and restrained.
New context can be overlapped on one place over time in some cases, for example, Japanese General Government at Gwanghwamun Gate, which was built and later demolished. Jerusalem, where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are mingled, is also one of the places with different historical pasts.
Past can also be completely deleted in other cases. The archaeological discovery of Aztec temple relics under Zocalo Square of Temple Mayor in Mexico City was a historical event that changed the identity of the place. This is not a rare case. Modern development is changing Korean cities into concrete forests every day, deleting the history and context with bulldozers.
Besides these sudden changes of map through civil engineering and construction, space as a place being newly defined and established is very common in our cities. For example, moving has recently become convenient. Apartment interior with traces of one family can be wiped out immediately and only some new wallpaper is required for a different life of another family to take the place. In modern cities, it is easy to find place history being easily erased replaced with another context.
Artist Mi-ryeon Kim can be compared to an archaeologist who takes an adventure through the hidden past under Zocalo Square and revives the context. Before/After (2006) displays the excavation processes of the space behind a wall at Dusseldorf Academy of Art studio, which was plastered and painted over for an exhibition. Just as the Aztec Temple under Zocalo Square suddenly revealed itself through the earthquake, and a wall crack in Dunhwang Mogao Cave 16 opened up the famous Mogao Cave 17, the artist catches a fine clue on the white plastered wall that leads to the past, carefully reveals the hidden space like an archaeologist and opens it for viewers. It is a cold-hearted process similar to a scientific investigation at a crime scene, but the moment when the result reveals what was hidden and two places, contexts or realities in one space cross over reminds 9 and ¾ platform magic of King’s Cross Station at London (a scene of the movie, Harry Potter).
What this work clarifies, however, is the history of this place. Elaborate separation exposes the two realities and they come together through evident traces.
Wall Closet, a wall projection or LCD screen that displays these two realities crossing over, should be considered as a following series. And the next step Mi-ryeon Kim takes is reconstructing map of various contexts. Remapping 3 (2006) demonstrates through its structure that the world is variable depending on the history and perspective, inspired by her encounter with Atlantic-centric map in Europe while she was accustomed to Pacific-centric map commonly used in Korea. This piece, thus, reminds the fact that the world map or how we understand a place is always different depending on the perspectives. And Remapping Worringer Platz (2007) shows multi-cultural and complex situations in Glass House at Worringer Square, which is visited by travellers with various nationalities, contained in a ‘composition’ of a cube ‘planar figure’. Therefore, the sky located in the center of various events shown in this piece could be compared to the center of world map, such as the Pacific or the Atlantic.
Since the return to Korea, Mi-ryeon Kim has been taking another approach on place. A possible explanation might say that this work origins from ‘I am here, thus I am not there’ proposition, the obvious logic of alibi for crime investigation, but the aim of the artist here is to overcome the discontinuity among ‘places’ that must occur when we move from one space to the next and melt them together into one. Here and There is a film showing scenes of roads that she recorded for 10 years in Europe and Korea through a car window, but it is played on two separate screens counter ways to each other. This is a space editing and place blending at the same time. These films are contained in an old traveller’s suitcase as if they are ‘old memories’. This display is continued in Rail (2008) and the sound work, Weather Forecast, which are currently played present and old ‘memory’ coincidently.
On the other hand, Four Open Corridor – Inside and Out seems to remind that ‘place separation’ dealt above is actually very common. The cubic space installation separates the place into inside and outside, and viewers are given with the ‘space’ that they are currently standing in and the present of the place on the other side of the wall that they are absent, shown through the screen.
‘Places that connect like Mobius strip’, in the end, is a phenomenon that happens inside the brain of the person who experiences it and a result of cherishing life in a place and internalizing it. Only this world, where places that the artist has come across throughout her life connect, interact and dissolve, could be called ‘the third place’ where the mind of the artist has found and her life as an artist inhabits.